[2002년 한일 월드컵]3. 김병지가 추락하던 날, 유상철은 정신 나간 놈

부동의 주전 골키퍼 김병지 추락하다, 한국 선수들은 아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안해.

 

 

 

■ 대표팀을 지휘한 첫번 째 경기, 고종수와 이영표를 눈여겨 보다.

 

 2000년 1월 홍콩 칼스버그컵 부터 4월 두바이 4개국 대회까지,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7경기에 참여해 선수들을 시험했다. 1월 24일 펼쳐진 노르웨이와 경기에서 고종수 선수가 페널트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전에는 김도훈 선수가 발리슛으로 득점했다. 하지만 경기는 역전을 당해 2:3으로 패했다. 이날 히딩크 감독은 고종수를 두고 파괴력이 있었다, 이영표 선수를 교체 투입하니 활기가 살아났고 영리하여 두뇌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말한다. 후에 대표팀에서 이영표 선수에게 등번호 10번을 배정하는데 이는 무수한 전설적인 선수들이 그랬듯 팀의 에이스에게 허락되는 등 번호였다. 앞으로 월드컵 기간 내내 많은 신임을 보여주는데 그의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한국팀은 백패스를 너무 많이 했고, 그 와중에 패스 미스가 너무 잦았으며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에서 압박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 술, 담배는 끊었어도 드리블 본능은 끊지 못한다.

 

 3일 뒤 파라과이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고종수 선수의 득점으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다. 경기 전날 고종수 선수는 히딩크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해 섀도우 스크라이커로 본인을 기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일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되었다. 이날 경기 후 히딩크 감독은 고종수 선수가 발재간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시기는 고종수 선수의 주가가 가장 높을 때 였고 팀 내 주전 경쟁에서 꽤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수비가담이 저조한 모습에는 다소 아쉬워하며 "패스만 찔러준다고 미드필더가 아니다, 수비할 때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걷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고종수 선수에게 더 발전하도록 개선점을 요구하기도 했다.

 

 

 

▲ 2001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전반 40분경 김병지 골키퍼가 골대에서 부터 중앙선까지 드리블 했다.(출처:라디오 스타)

 

  이날 파라과이전에서 최고 화제는 김병지 골키퍼의 골대에서 부터 하프라인까지 드리블을 한 사건이다. 전반 40분 경, 파라과이 팀의 슈팅을 완벽히 방어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전진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공을 멀리 차낼 생각의 김병지 선수였다. 그때 파라과이 선수가 김병지 골키퍼에게 압박을 가하려 접근했고, 김병지 선수는 공을 던치는 척 속임수 동작을 한 뒤 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골을 몰고 골대를 벗어나더니 중앙선까지 내달렸다.

 우리 벤치에선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히딩크 감독은 불 같이 화를 내며 손으로 X표시를 하는 가 하면, 공을 밖으로 차내라는 지시를 하였다. 하지만 김병지 선수는 드리블 끝에 파라과이 선수에게 공을 빼앗겨 버렸고 비어 있는 우리 골대를 향해 파라과이 선수들은 슈팅까지 시도한다. 다행히 우리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냈다. 그 모습을 본 히딩크 감독은 등을 돌려버렸고 베어백 코치는 고개를 떨군다.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은 "난생 처음 보는 관경이다."라고 그의 저서에 언급하고 있다.

 이후 후반전에 김용대 골키퍼를 교체 투입했고 김병지 선수에게 "골키퍼는 마지막 보루다, 월드컵에서는 절대 그런짓을 하면 안된다."고 격양된 충고를 했다.  여러분들과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후 2002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김병지 선수는 단 1분도 경기에 투입되지 못한다.

 

 

 김병지 선수가 갖고 있는 인지도, 입지 등을 고려했을 때 큰 사건이었다. 어느 팀이든 다른 포지션을 몰라도 골키퍼만큼 한번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 잘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김병지 골키퍼는 수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골키퍼였지 않나? 심지어 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5:0으로 대파했던 히딩크 감독 본인이 경기 후 "우리는 더 많은 골을 한국팀에게 넣을 수 있었지만 골키퍼가 그것을 막았다."라고 인터뷰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후일담으로 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김병지 선수를 영입하려는 제의까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적이 이루어졌다면 박지성 선수가 아닌 김병지 선수가 한국 최초 프리어미어리거가 됐을 것이다.)

 

 통상 감독 기간동안 히딩크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없지만 이 날 예외적으로 "골문 앞 지역에서 그런 어릿광대 같은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공표했다. 단단히 화가 났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김병지 선수가 이와같은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볼만하다. 대표팀의 주전을 두고 경쟁하는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본래 김병지 선수는 공격적인 성향이 짙은 골키퍼였다. K리그 내에서도 골에어리를 벗어나 곧잘 공을 몰고 나오기도 했다. 한국 축구사의 레전드 격인 K리그 98시즌에서 경기 시간 90분이 지나 추가로 주어진 인저리 타임. 김병지 골키퍼는 직접 코너킥 상황에 참여해 헤딩골을 이루어낸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당시 TV중계를 통해 이 장면을 보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방송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엔딩크레딧 처럼 TV우측 화면에 올라가는데 그 배경에 김병지 선수를 계속 클로즈업한 화면이 나왔다.) 이렇듯 보통의 골키퍼들과는 달리 세간의 스포라이트를 받는데 익숙한(또는 선수 본인이 즐겨던 듯도 하다, 그의 노란 염색 장발 머리 등도 한 예로 말이다.) 그 였기에 칼스버그컵 대회에서도 그러한 행동을 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정작 당시에는 선수 본인에게 큰 상처가 되었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을 통해 화자될만큼은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은퇴 후 해설자로 분한 자신이 경기 해설 중 "어떻게 그리 오랜 선수생활을 이어왔냐?"질문에 스스로 "은퇴한 지금도 체중이 선수시절과 같다. 몸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술, 담배도 끊었었다." 하지만 "드리블 본능은 끊을 수가 없었다."는 자학(?) 개그로 당시 실수를 인정하며 유머로 승화했다.

 

 

■ 고종수, 송종국, 박지성 중용되고 5월 컨페더레이션 컵을 앞둔 소집에서 안정환, 이동국, 김병지는 제외된다.

 

 2월8일 두바이 4개국 대회의 모르코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기고, 2월11일 아랍에미레이트에게 4:1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2월 14일 덴마트에게 2:0패배하며 유럽팀에게 유독 약한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팀이었다.

 3월 17일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은 대통령배 국내 경기에서 고려대와 국민은행의 시합을 보고 차두리 선수와 이천수 선수에 대해 히딩크 감독에게 쓸만한 선수들이라고 언급한다. 히딩크 감독은 이천수 선수가 연습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괜찮은 것 같은데 너무 튀어보이는 선수라고 여긴다. 여기까지 일정을 통해 송종국 선수에게 체력이 좋은 선수로 평하는가 하면, 고종수 선수에게 "훌륭하다, 여러 포지션을 맡겨볼 수 있는 선수다."라고 한다.

 특히 4월 26일 LG컵 결승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2:1로 승리를 거둔 다음 박지성 선수를 두고 "체격도 작고 약해보였지만, 회복력이 좋고 체력이 뛰어나다, 볼감각도 좋고 수비위주 플레이에서 공격 역할도 잘한다."며 평소 훈련에 성실히 임하는 모습까지 큰 만족감을 보이기도 했다.

 

▲ 수년의 국가대표 기간 내내 서로 버팀목이 된 황선홍과 홍명보

 

 

 반면, 5월11일 컨페더레이션컵을 앞두고 선발명단을 구성하면서 안정환, 이동국, 김병지 선수들을 제외한다. 체력과 경기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5월25일 카메룬과 친선경기를 가져 0:0으로 비긴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의 플레이를 처음 보고는 "한국 코치진들이 적극 추천한 선수였는데 듣던대로 좋았다, 후반 경기 실마리를 풀어주었고 슈팅이나, 움직임이 베르캄프 또는 반 바스텐을 연상케 한다."며 칭찬한다.

 

 

■ 유상철은 정신 나간 놈

 

 5월30일 컨페더레이션 1차 경기에서 전 월드컵 우승국이자 당시 피파랭킹 1위인 프랑스를 만났다. 전반에 2골을 내주고 후반전에 3골을 내줘 홈에서 5:0 대패를 당했다. 유럽팀에 약한 면모를 갖고 있었고, 상대가 세계 최고 프랑스였지만 홈에서 5:0 패배는 그 여파가 컸다. 특히 홍명보 선수와 이민성 선수의 폼이 좋지 않았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날 경기를 직관했는데, 우리 대표팀이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생각보다도 프랑스 대표팀이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홍명보 선수 자서전에서 이날 경기를 두고 전반 30분부터 힘에 부치는 상대들이라 느꼈고, 그동안의 축구경기 중 가장 힘든 경기 중 하나였다고 언급한다. 경기 후 소속팀인 가시와 레이솔로 돌아가서는 이 경기를 본 일본 선수들이 홍명보 선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 선수를 두고도 "일본이나 한국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 선수지만 세계적 무대에 뛰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앞으로 홍명보를 어떻게 활용한 것인지 고민해보겠다."고 하며 기존 주축 선수들도 주전 경쟁에서 예외가 아님을 시사한다. (실제 수개월 후 홍명보 선수는 대표팀 승선을 두고 큰 시련을 맞이하는데, 이는 이후 포스팅에서 후술하겠다.)

 

▲ 대한민국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 하면 나는 유상철 선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출처:게티이미지)

 

 그 다음 이어진 6월1일 멕시코와 두번째 경기. 황선홍 선수와 유상철 선수가 한골씩 기록해 2:1 승리를 거둔다. 히딩크 감독은 "며친 전과 같은 참패를 당하면 아무리 강한팀이라도 후유증이 오래간다. 한국팀은 이틀만에 그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 특히나 지난 월드컵에서 졌던 팀을 상대로 말이다."라고 하며 놀라운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이날 경기에서 유상철 선수가 전반전 상대 선수와 부딪혀 코뼈가 부러졌다. 하프타임때 그를 교체하려 하자, 유상철 선수 본인이 감독에게 다가와 손짓, 발짓을 하며 무조건 뛰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다행히 의료진은 뛰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였고,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도 유상철 선수를 기용한다. 그리고 그는 득점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런 유상철 선수의 투지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감독했던 유럽의 경우 조그만 다쳐도 꾀병을 부리는 선수들이 많은데 코뼈가 부러져도 바득바득 뛰겠다는 선수가 있으니 적지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이 겪었던 유럽선수들과는 정 반대였다. 유상철 선수를 비롯해 다른 한국 선수들은 아픈데도 오히려 그것을 숨기고 경기에 뛴다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미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대표팀에서 승선하고 싶었으면 주전경쟁에서 밀릴까 부상도 숨겼을까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하다.)

 경기 후 유상철 선수는 열흘 안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임을 진단 받았고 히딩크 감독은 다음 경기에 유상철을 제외하자니 아쉬움을 느꼈다. 이 해프닝을 두고 유상철 선수를 "정신 나간놈이다."란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댓글(2)

  • 야거
    2018.07.04 03:53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이영표 백넘버 10번은 얼마전 밝혔는데 최고참인 황선홍 18번, 홍명보 20번을 배정받은 상황에서 10번은 누가 가져갈까 했는데 다들 번호가 주는 부담감에 기피했다고 '볼쇼이영표 5회' 에서 전화통화로 최용수감독님이 밝히더군요. 그래서 돌다가 젤막내 수비수인 영표에게 갔었더라는...

    • 2018.07.04 07:32 신고

      근래 들어 2002월드컵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이 방송에서 당시 에피소드들을 많이 이야기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본문에 덧붙히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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